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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씨가 동방으로 오게 된 사적
작성자 관리자 [2021-07-05 10: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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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가 동방으로 오게 된 사적

 

동쪽 우리나라에는 처음에 오성(吳姓)이 없었다.

오공의 휘는 첨(瞻) 자(字)는 희명(希明)이며 호(號)는 망재(望齋)니 오공 기(起)의 후손이다.
신라 지증왕 원년 경진(500)년에 오공 첨(瞻)이 제(齊)나라에서 바다에 떠서 우리 동방의 해남 땅에 이르러 살다가 법흥왕 9년 임인(522)년에 오공이 장자(長子) 긍(肯)과 함께 초(楚)나라 수도(首都) 성도(成都)로 돌아가고 차자(次子) 응(膺)은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갈 수가 없어 모부인 김씨와 자형(姉兄) 석성(昔成)을 받들고 처음에 그대로 함양(咸陽)에서 살았으니 이로부터 오씨가 동방에 나타났다.

 


오공 첨은 대대로 장상의 집안으로 일찍이 큰 계략이 있어 수군대도독(水軍大都督)이 되었더니 웅대하고 호방한 뜻으로 혐의를 입어 배를 타고 동방으로 표류하여 해남 땅에 이르르니 첨사(僉使) 이상보(李相輔)와 현리(縣吏) 정용문(鄭龍文) 등이 병대를 일으켜서 잡고 재화와 보물을 탐내 빼앗아 숨기고 아뢰지 않았는데 얼마 안있어 일이 조정에서 듣고 오공과 첨사를 모두 붙잡아 첨사는 외국 사람이 경내에 들어온 것을 보고하지 않은 죄로국법을 범했으므로 형벌을 가하고 오공은 실지로 사정을 고(告)하였더니 상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명하여 함양에 살게 하였다.


당시 사람이 외국 사람과는 서로 통혼할 수 없다고 이르는 까닭으로 취처(娶妻)할 수가 없었는데 마침내 왕명으로 김종지(金宗之)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2남 1녀를 낳으셨다.

그 뒤에 공은 그 장자(長子) 긍(肯)과 함께 다시 초(楚)나라 수도(首都) 성도(成都)로 돌아가니 그 자손이 서로 이어서 끊어지지 않았고 송조(宋朝)에 이르러 당시에 오충(吳蟲), 오안시(吳安時), 오견(吳?), 오잠(吳潛), 오렵(吳獵)이 있어 마침내 대성(大姓)이 되었으며 차자 응(膺)은 그대로 함양에서 살며 아들2명을 두어 문무(文武)를 대마다 이으니 성족(盛族)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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